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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본 영어판. 이 표지가 더 이 책의 내용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10개의 단어로 말하는 중국. 

 

위화 김태성
문학동네 20120908
원제가《열 개 단어 속의 중국》인 이 책은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 등 열 개의 단어를 통해 중국...
 

한번씩 들춰보면 처음 본 듯 소리내며 웃게 되는 산문집이다. 어제도 자려다 잠깐 읽는다는 게 순간 다시 읽어버렸다.

작가 위화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60-80년대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잘 몰랐다. 그 시대 중국에 대해 아는거라곤 장예모(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몇 편과 장국영 주연의 패왕별희에 잠깐 나오는 문화혁명 정도였다.  북한 한다리 건넜다는게 예전엔 그리 가깝게 영향받고 살았으면서도 나의 세대엔 존재하는걸 알지만 모르는 나라가 중국이다. 저자는 거대하고 잔혹한 이념이 지배하던 시대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그 아픔을 감당해 오며 성장해 올 수 있었는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살아오면서 느끼지만,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시대라는 틀에서 다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영향을 오롯이 받고 살아가지 않던가. 문화혁명시대에 이유없이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피비린내 나는 상황에서도 상처받은 어린 마음을 천진하게 담담하게 묘사하는데 웃으면서도 애잔하다. 하나의 주제로 현대의 중국과 과거 자신의 경험을 어찌나 자연스럽게 연결해 재밌는 글을 써내는지...어릴때 모택동과 루쉰의 책 말곤 없던 시대에 자란게 맞는지, 역시 작가는 타고나는 것인거다 ( 실제 중국 사이트에 널린 위화의 사주를 찾아보고 역시나 했다. 문창귀인과 도화라니! )  문장 속 단어의 꾸밈도 없이, 섬세한 감정 표현 대신 큰 붓으로 일필휘지 서예를 하듯 묵직히 담백하게 써내려간 마지막 끝맺음 문장까지 읽다보면 '잘 쓴다. 잘 쓴다'  탄성이 절로 난다. 

 

서문 

나는 간단명료한 작업을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일상생활을 평범하고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삼라만상을 담고 있다. 일상생활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풍부하고 넉넉하다. 정치와 역사, 경제, 사회, 문화, 기억, 감정, 욕망, 사삿일 등이 모두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소리를 낸다. 일상생활은광활한 숲과 같다. 중국의 속담에서 말하는 것처럼 숲이 크면 어떤 새든 다 그 속에 사는 법이다.

내가 이 책을 쓰는 것은 일정 구간을 왕복하는 버스기사와 마찬가지로 출발점과 종점을 왕복하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이야기를 가득 실은 버스를 몰고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출발하여 정치와 역사, 경제, 사회, 문화, 기억, 감정, 욕망, 사삿일 등의 정거장을 거쳐 지명을 알 수 없는 어느 시골로 가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들은 도중에 차에서 내릴 것이고 또 다른 이야기들이 중간에 차에 오를 것이다. 이렇게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장거리를 달린 다음에는 버스를 몰고 다시 중국인의 일상생활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 18p ) 

 

인민 

인민은 내가 가장 먼저 인식하고 가장 먼저 쓴 단어였지만 살아가면서 연이어 망각하고 배신했던 단어다. 내 눈앞에 무수히 나타났고 내 귀에 무수히 올렸던 이 단어가 진정으로 내 마음속에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가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에 아주 깊은 밤의 경험 덕분에 마침내 이 위대한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 단어를 거짓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만났다고 할 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언어학 또는 사회학, 또는 인류학적인 의미에서의 만남이 아니다. 그건 인생의 경험 속에서 얻은 진실한 만남, 모든 이론과 정의를 제거하고 난 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만남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 '인민'이라는 단어가 절대로 공허한 단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이미 피와 살을 갖춘 '인민'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인민'의 심장이 강렬하게 요동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21p)

 

독서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죽음은 서늘한 밤이다"라는 하이네의 시구를 읽게 되었다. 그러자 오래전에 사라진 유년의 기억이 내 전율하는 마음속에서 순간적으로 되살아났다. 방금 목욕을 한 것처럼 맑고 뚜렷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 기억이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만일 문학에 정말로 신비한 힘이 존재한다면 나는 아마도 이런 것이 그 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말이다. 하이네가 쓴 시가 바로 내가 유년 시절 영안실에서 낮잠을 잘 때의 느낌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108~109p)

 

글쓰기

지금의 나는 이미 27년이라는 글쓰기 경력을 갖고 있고 이제는 "나는 글쓰기를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통틀어 표현하고 싶은 무수한 욕망과 감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억압된 욕망과 감정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가 사람의 심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인생을 더욱더 완전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또는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두 갈래 인생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하나는 현실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허구의 길이다... 내 현실에서의 삶의 길이 갈수록 평범해지는 것은 허구에서의 내 삶의 길이 갈수록 풍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147p)

 

후기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년 라디오 인터뷰( 170602 TBS Podcast인터뷰 전문 TEXT) 를 들었을 때도 소리내어 웃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을 비틀어 웃음을 만들어 내는 해학이 글 뿐만 아니라 그 인터뷰에도 녹아 있었다.  

이런 특별한 웃음이, 이런 슬픈 유머가 있는 사람과 작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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